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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꽃 피우는 평화의 섬 제주

언론보도

딸이 물었다 "제주 4.3은 북한 사람들이 그런 거지?" -오마이뉴스-

[2018-04-04] 작성자 최고관리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박물관을 다녀왔다. 아내가 기획전시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를 보고 싶다고 한 덕분이었다.

이제 6살, 8살, 10살 되는 아이들에게 좀 어렵지 않을까, 잔인하지 않을까도 싶었지만 걱정은 내려놓기로 했다. 이미 삼남매는 작년 5월 제주도 너븐숭이 4.3 기념관과 섯알오름 등을 다녀오면서 제주 4.3에 대해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처참한 글과 그림, 보는 사람을 압도할 만큼 빼곡하게 들어선 희생자의 이름, 사탕과 장난감이 올려져 있는 어린아이들의 무덤까지 아이들에게 제주 4.3은 꽤 충격적인 듯 했다. 오죽하면 역사에 관심 많은 둘째 산들이는 제주도를 나오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4.3을 그리기까지 했다.

제주 너븐숭이의 아기무덤 장난감과 사탕이 있는
▲ 제주 너븐숭이의 아기무덤 장난감과 사탕이 있는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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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그린 제주 4.3 아이 뇌리 깊이 박힌 역사의 비극
▲ 아이가 그린 제주 4.3 아이 뇌리 깊이 박힌 역사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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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3층에 마련되어 있는 제주 4.3 기획전시는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곳에는 제주 4.3이 벌어지게 된 배경과 그 경과 등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그보다 눈이 가는 건 4.3 때 가족을 읽었던 당시 11살 되는 할머니 이야기였다.

4.3을 통해 부모님을 여의고 오빠까지 잃었지만 나이 80이 넘기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살았던 긴 세월. 할머니는 이제야 당시 자신이 봤던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 참혹한 모습에도 묻어있는 절절한 그리움이 가슴으로 전해졌다. 70년 동안 얼마나 큰 고통을 혼자 이고 사셨을까.

전시관에는 유독 어르신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내 나이 또래의 이들은 전시물들을 대충대충 보면서 건너뛰는데 반해, 그 분들은 지난한 시간을 곱십듯이 하나하나 유심히 또 보고, 또 보고 계셨다. 이제야 자신만 알던 진실들이 들어나고 있음을, 저 멀리 남도에서 있었던 만행이 서울에도 전시되고 있음을 뿌듯해 하시는 듯 했다.

상념에 빠지신 어르신 그들이 기억하는 70년 세월
▲ 상념에 빠지신 어르신 그들이 기억하는 70년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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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서 뭘 아는지 모르는지 휘뚜루마뚜루 전시물들을 돌아보며 까르르 거리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더니 어르신 한 분이 물었다.

"아이가 셋이요?"
"네? 셋입니다."
"딸 하나에 아들 둘? 가장 좋네. 애국하네요. 너희들은 아빠 따라 이런 데 다니면서 많이 봐야 된다. 알았지?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난다."

가슴이 시렸다. 나의 아버지가 둘째를 보며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가던 당신의 모습을 떠올렸듯이, 만약 그들이 제주 4.3과 관련되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당시의 자신을 떠올렸을 것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멈춰져 있는 기억. 그것이 제주 4.3의 현실이었다.

까꿍이의 질문

제주 너븐숭이 4.3 기념관 순이삼촌 문학비 70년전 쓰러진 제주도민의 모습 그대로
▲ 제주 너븐숭이 4.3 기념관 순이삼촌 문학비 70년전 쓰러진 제주도민의 모습 그대로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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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둘러보고 온 그날. 저녁이 되자 까꿍이는 바빴다. 주말 지낸 일기를 써야한다며 오늘 다녀온 박물관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아빠, 그래서 제주 4.3은 북한 사람들이 와서 제주 사람들을 죽인 거지?"
"잉? 아니야."
"그럼? 누가 제주 사람들을 죽였어?"

순간 당황했다. 그 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할지 아득해졌다. 아니, 작년 5월에도 제주도에서 그렇게 설명했건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하긴. 초등학교 3학년이 제주 4.3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북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통령이 죽였어. 첫 번째 대통령. 이승만."
"잉? 우리나라 대통령이 우리나라 사람을 죽였다고? 왜?"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끝났는데, 우리 대통령이 일본 편에서 우리나라 사람들 못살게 굴던 경찰들을 다시 불러들인 거야. 자기 말 잘 듣는 사람들 찾는다고. 그런데 그들이 제주도 사람을 못 살게 굴고, 그래서 제주도 사람들이 못 견디겠다고 일어난 거지."
"우리가 작년에 촛불집회 나간 것처럼?"
"그렇지. 그런데 그때는 경찰하고 군대가 와서 사람을 죽인 거야."

제주4.3에 대한 기억 우리의 역사
▲ 제주4.3에 대한 기억 우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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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 나쁜 대통령이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가만히 있었어?"
"가만히 있지는 않았는데, 그때는 북한이 막 쳐들어오기 전이어서 그들이 북한 편이라고 생각한 거지. 그리고 전쟁 뒤에는 4.3 이야기를 하면 국가가 간첩이라고 막 잡아가고 그랬어. 그 대통령은 나중에 박근혜 대통령처럼 쫓겨났고."

설명은 겨우 했지만 아이의 표정은 역시나 종잡을 수 없었다. 나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아직 제1야당 대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제주 4.3이니 아이에게는 어려울 수밖에. 아니나 다를까. 아빠의 설명을 듣고 쓴 아이의 일기는 까꿍이가 아직 4.3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제주는 무서운 역사가 있었다. 아빠는 옛날 대통령이 제주 사람들을 죽였다고 했다. 죄가 있는 사람들은 몰라도 죄가 없는 사람들에게 총을 왜 쐈는지 궁금하다. 경찰들이 아기들도 죽였다고 해서 무서웠다. 불쌍한 사람들.......어디서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주도 4.3아 미안해.'

그래도 아이의 일기를 보면서 다행이었던 건, 까꿍이가 제주 4.3을 제주도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이제 제주 4.3은 우리의 역사이며, 그들의 눈물은 우리의 아픔이자 역사의 비극이다.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낄 수 있는 마음. 어쩌면 그 춥던 겨울, 촛불집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던 거는 그런 감성을 물려주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주 4.3 희생자들 그 어마어마한 슬픔
▲ 제주 4.3 희생자들 그 어마어마한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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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흐드러진 붉은 동백꽃' 앞에 선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ㆍ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ㆍ3희생자 추념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 '흐드러진 붉은 동백꽃' 앞에 선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ㆍ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ㆍ3희생자 추념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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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대통령으로서는 12년 만에 제주 4.3 추념식을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고 제주 4.3을 추모했다. 제주 4.3을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으로 규정하고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비록 70년이 걸렸지만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다시금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그 국민 속에는 좌와 우가 따로 없다.

"70년 전 이곳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습니다. 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도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습니다.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의 당연한 연설에도 눈물이 찔끔 나는 것은 그만큼 지금까지의 정부가 나라다운 나라로서 국민을 대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대선 이후 5.18 광주민주화항쟁 추모식에서부터 이번 제주 4.3까지 6.10항쟁일, 현충일, 광복절, 삼일절 등 문 대통령의 기념사를 매번 찾아서 듣는 것은 그만큼 국가가 제대로 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이제 4.16 세월호가 남았다.

문대통령 추모사의 마지막 구절을 아이들에게 읊조려본다.